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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룻기 강해 9. 깁보르 하일
    룻기 강해 2024. 2. 12. 17:20

    20180415

    룻기 21~3

     

     

    1954년 한 젊은 미국인 선교사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이름은 조지 오글. 1954년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암울한 땅이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가난과의 전투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가고 있었고 희망은 꺼진 담뱃불만큼도 보이지 않을 즈음이었죠. 조지 오글 선교사는 대전 지역에서 중고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사역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명걸이라는 한국 이름도 갖게 되었습니다.

    3년 뒤 파송 기한이 끝나서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시카고 지역의 도시빈민을 위한 사역을 합니다. 예수는 목수의 아들이었고 그 제자들은 거의 일자무식에 가난한 사람들이었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고 부요한 자에게 화 있다고 선언한 종교였으나 실제 그렇게 행동했던 사람들은 장작대에서 불태워지거나 이단으로 조리돌림 당하거나 최소한 왕따 당했던 것이 부끄러운 기독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당시에 그가 속해 있었던 교단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래서 오글 목사는 그가 떠나온 한국으로 발걸음을 다시 옮깁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인천에서 전혀 새로운 방식의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서전도를 하면서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교회에 나올 틈도 없이 격무에 시달리고 박봉에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과 같이 아파하는 방식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오글 목사 아니 오명걸 목사는 철저하게 한국인들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도시락에는 김치와 깍두기가 항상 들어가 있었고 그의 네 자녀는 모두 한국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때 만들어진 선교회가 이른바 도선으로 불리는 도시산업 선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때 오명걸 목사에게 훈련 받아서 도시빈민 선교의 어머니로 불리웠던 분이 조화순 목사입니다. 조화순 목사의 고백에 의하면, 오명걸 목사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이 노동자들을 선교하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버리시오.”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명걸 목사는 조화순 목사에게 희한한 숙제를 내 줍니다.

     

    오늘 찾은 예수를 적어 내시오. 당신 주변에서 예수를 찾으시오.”

     

    그렇게 한국 생활을 이어 가던 오명걸 목사가 제 2, 3의 예수를 발견하는 날이 옵니다. 한국 역사상 가장 최악의 사법살인이라고 평가되고, 국제 사법 단체에서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고 규정한 1974년 인혁당 사건이 있습니다.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박정희 정권에서 간첩조작 사건을 만든 거지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이 굴비처럼 엮여 들어가서 몸이 망가질 정도의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만들어져서 묵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 이른 겁니다. 그 가족 중 몇 사람이 오명걸 목사를 찾아 왔습니다.

    우리 남편 좀 살려 주세요.” 울부짖는 여자와 아이들 앞에서 오명걸 목사는 당황합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호소는 너무나 절박했고, 오명걸 목사에게 들려오는 음성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또 한 번 바뀌게 됩니다.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게 된 오명걸 목사는 1974 10 10 KNCC 목요 기도회에서 감히 인혁당 사건을 입에 담습니다.

    .

    예수님은 우리들의 형제자매들 중 가장 보잘것없고 약한 자를 통해 우리에게 오십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혹독한 형을 받은 여덟 사람이 있습니다.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우리들 중 가장 약한 자로서 예수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생명과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사형을 받을 만한 죄를 짓지 않았을 겁니다.”

     

    엄연히 미국 시민이었지만 그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20시간 동안 곤욕을 치릅니다. “당신도 빨갱이지?”에서 시작해서그들이 빨갱이라는 사실을 증언하시오.”를 거쳐그들이 빨갱이라는 걸 몰랐다고 얘기해 주시오.”까지 압박과 회유가 쏟아졌지만 오명걸 목사는 굴복하지 않습니다.

     

     뜻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오, 운명에 맡겨 삶이 그 생활 아니라.”

     

    박정희 정부는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미국인을 그대로 둘 만큼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오명걸 목사, 미국인 조지 오글에게는 대한민국을 떠나라는 추방령이 떨어지죠. 1974 12 14일이었습니다. 급작스런 추방이었고 주변을 정리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짐을 싸는데 한 한국인 아주머니가 다가와 금반지를 끼워 줍니다. 인혁당 관련자로 사형 선고를 받은 이의 아내였습니다. 울컥했겠죠. 사형 선고를 받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갔을 것이고 십 수년의 한국 생활 동안의 희로애락이 너무도 원통하게 가슴을 흘러갔겠죠. 비행기 트랩을 반강제로 떠밀려 올라가면서 그는 외칩니다.

    대한민국 만세.,,,,, 하느님이 함께 하시기를....” 그러면서 오른 손 주먹을 들어서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을 보여줍니다.

    비행기가 한국의 영공을 벗어날 무렵 기내식을 전하던 스튜어디스가 음식과 함께 메모지를 떨어뜨립니다.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

    오글 목사님, 안녕히 가십시오. 저는 한 젊은이입니다. (제 이름을 쓸 수 없습니다.) 저희 대부분은 목사님께서 저희 나라의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저희 마음도 목사님과 함께 울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이름은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상황은 변할 것이며 머지않아 목사님께서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한국으로 초청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발 건강하십시오.”

     

    시커먼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오명걸 목사, 조지 오글 목사는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금반지를 건넨 사람은 인혁당 관련자 우홍선의 아내였던 강순희씨였습니다. 남편을 너무나 사랑해서 남편을 죽음으로부터 건져 내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했던 그 바램도 헛되이, 금반지의 기원도 아랑곳없이 박정희 정권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판결이 난 후 18시간만에 관련자 8명을 모두 죽여 버립니다.

     

     

     

    오글 목사는 미국에 간 이후에도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고 미 의회 청문회에서도 증언했지만 인혁당 사형 집행 소식을 들은 뒤 견디기 힘든 괴로움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추방 이후 수십년 동안 그는 손가락에서 강순희씨가 준 금반지를 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02 10월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오른손을 들어올려 여지껏 그의 손가락을 떠나지 않은 금반지를 한국인들에게 보여 줍니다. 그 분은 유명한 신학자도 아니고, 흔히 말하는 대형교회를 세운 성공한 목회자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언론의 주목을 받은 분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조지 오글 목사를 신앙의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룻기 1장의 마무리가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마침 보리 추수를 시작할 무렵이었다라는 구절을 살피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룻기의 저자는 기막힌 복선을 통해서 앞으로 다가오게 될 필연적인 사건을 암시하고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은 모압 땅에서 죽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척이고, 이름은 보아스 입니다.

    혹시 보아스라는 이름 어디서 들어보지 않으셨습니까?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 위에 올라서 최초로 성전을 건축하고 성전 현관에 기둥 두 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기둥에 이름이 있지요. 오른 쪽의 기둥은 야긴, 그가 세웠다는 뜻입니다. 왼 쪽의 기둥이 보아스입니다. 바로 오늘 룻기 2장에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뜻은 능력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21절을 자세히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과 집안간으로서,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이다.”

     

    보아스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세 단계로 나옵니다.

    남편 쪽으로 친척, 엘리멜렉과 집안간, 다음 마지막으로 재력이 있는 사람이란 수식어 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이 대목에서 한 마디 하게 되지요. 앞 부분에서 계속 남자들이 죽고 빈털털이가 되어서 고향에 돌아 왔으니 앞으로의 반전이 마치 로또 맞은 것처럼 전개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맞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전개 됩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타향에 온 룻은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 추수하고 있는 남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서 끼니를 해결하려고 나섭니다. 그런데 우연히하필이면 찾아 나선 밭이 재력가이며 죽은 시아버지의 친척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3절입니다.

     

    그리하여 룻은 밭으로 나가서,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웠다. 그가 간 곳은 우연히도, 엘리멜렉과 집안간인 보아스의 밭이었다.”

     

    이 우연은 결국 그녀에게 행운을 안겨다주지요. ‘어찌어찌해서 재력가보아스와 룻은 결혼 하게되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다윗 왕의 할아버지였다’.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당시의 유대인들이 원어인 히브리어로 들었을 때의 반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1절을 다시 봐야 합니다.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과 집안간으로서,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이다.”

     

    보아스를 수식하는 마지막 단어 재력이 있는 사람이란 단어에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지난 주에 살폈던 샤따이, 전능하신 분만큼이나 번역이 아주 어렵습니다. 이 단어의 원어는 깁보르 하일גִּבּ֣וֹר חַ֔יִל 이란 합성어 입니다. 여러분이 많이 가지고 계시는 개역개정 성경에는 유력한 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영어 성경들도 제각각 입니다.

     

    유대인의 역사를 공유하지 않은 사람은 사실 이 단어가 주는 뉘앙스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세련된 번역을 해도 실감나지 않습니다. ‘깁보르 하일이란 단어는, 그 단어를 듣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의 울림을 주는 한 민족에게 있어서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영웅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한 민족에게 깁보르 하일은 이순신 장군 정도의 전쟁영웅이나 세종대왕 같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합니다. 성경에서도 예가 등장합니다.

     

    사사기에 보면, 기드온이라는 위대한 장군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부릅니다. ‘깁보르 하일! 위대한 용사여, 일어나거라.’ 이 말을 듣고 기드온은 놀라서 기절할 뻔 하지요.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불과 300 명을 거느리고 가서 수만 명의 연합군을 대파해 버립니다. 당시에는 왕이란 제도가 있기 전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중에 기드온에게 가서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고 간청을 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구약성경에 이 단어가 사용된 용례는 여러차례 나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힘있는 장수용맹한 사람을 뜻합니다. 아마 많은 성서학자들이 이 단어를 번역하느라 애들을 많이 썼을 겁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부자였고 나중에 나오미와 룻에 대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목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 위해서 재력가유력한 사람으로 반역을 한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번역이 원문의 뉘앙스를 축소시키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보아스가 전쟁영웅정도의 무게감을 갖고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보아스라는 이름 자체가 능력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아주 슈퍼 울트라 능력자라는 뜻이겠지요. 쉽게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빈 손이 되어 버린 나오미와 룻에게 보아스는 그런 능력자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룻기의 다음이야기는 어떻습니까?

    보아스는 룻과 운명적인 만남을 한 후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 가난 때문에 팔아야 했던 그녀의 시아버지가 소유했던 땅들을 다시 사줍니다. 그리고 과부인 룻과 결혼합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여러분은 이 대목에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명히 본문에서 보아스의 등장은 어마어마한 빵빠르와 함께 등장합니다. ‘깁보르 하일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말입니다. 그가 한 일은 그저 집안 일일 뿐입니다. 물론 그와 룻의 후손 중에는 다윗도 있고, 예수님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일단 룻기의 텍스트 속에서는 깁보르 하일에 어울릴 만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룻기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여러분은 깁보르 하일을 주로 어디에서 찾으십니까?

    나라를 구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위인들에게서 찾으십니까? 보아스가 깁보르 하일로 등장한 것은 오갈데 없는 과부들을 돌본 것 때문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조금 나누어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깁보르 하일, 복음의 위대한 영웅은 성도를 수백 수천 수만 명 거느리고, 어마어마하게 큰 예배당에서이웃을 위해 선한 일 했다고 방송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주는 것에서 깁보르 하일은 발견됩니다.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렸던 조지 오글 목사님 같은 분들입니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우리는 세월호 추모예배를 드립니다.

    너무 작은 공동체여서 사람들 눈에 뛰는 행사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매년 주보에 실린 304명의 희생자들을 한 번이라도 불러주고, 그 유족들을 위해서 기도해 준다면, 그들의 눈물에 공감해 주고 기회 있을 때 마다 그들 곁에 있어주는 작은 몸짓 만으로도 우리는 깁보르 하일이 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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